2025 삭이는, 삭이지 못하는 바다 Jack in: the Sea, GS 칼텍스 예울마루
안소연
(미술 비평가)
시간과 잔해
* 바다의 일렁임을 보면서 저 유동적인 수면 아래 봉인된 지나간 시간, 지나간 장소, 지나간 사건, 지나간 존재들에 대해 떠올렸던 모양이다. 형세린은 저 액체의 유동성이 드러내는 감각의 층위들에 주목해, 자신의 회화로 되돌아와 그것을 둘러싼 감각을 다시 살폈다.
그동안 일상적인 장면이나 특정 장소에서 마주했던 대상들로부터 감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그는 그러한 이미지들을 드로잉과 회화 및 설치의 감각으로 변환시키는 매개자임을 자처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간 해외 레지던시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낯선 도시 풍경에서 마주하게 된 현실 세계의 이미지를 회화적 시각으로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에 집중해 왔던 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회화 작업은 어쩌면 “기록”이라는 소임에 더 다가가 있는, 일종의 실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는 거대한 세계의 흐름 안에서 움직임을 잠시 중단하고 멈춰 있거나 흐릿하게 반짝이는 미시적 감각에 주목한다. 이 미시적 감각이란, 식별 불가능한 미시 세계를 두고 말하기 보다는 한 대상이 처해 있는 개별적 상황을 말한다. 이 세계의 질서에서 벗어난, 일종의 소외와 고립의 상태에 놓인 대상에 접근할 방법으로, 그는 회화적 감각을 살핀다.
장도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형세린은 섬과 바다에 둘러싸인 환경 속에 체류하면서 그가 헤아릴 수 없었던 바다의 시간과 그곳을 경유해 온 대상의 잔해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바다의 일렁임, 저 액체의 유동성, 그것이 가리키는 접근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 그 가장자리로 흐릿하고 희미하게 떠밀려 온 잔해들을 바라보며, 마치 중심으로부터 멀어진 외곽선에서 더 느리게 움직이는 존재(들)의 리듬을 읽어낸 듯하다. 올해의 회화 연작들은 거기서 시작되었고, 결과보고전의 형식으로 기획한 개인전의 제목은 《삭이는, 삭이지 못하는 바다》이다.
* 바다를 거대한 생명체의 소화액으로 상상했던 형세린은, 이 정황에 대하여 바다를 “기억”과 연관지어 바라봤던 속내 때문이라는 것임을 말해주었다. 수평선 밑에 물질 세계의 잔여물을 유폐시켜 놓은 바다라는 공간에 대하여, 그는 바다에 대한 감각을 확장시켜 “유동하는 물질”로서 파도가 일으키는 비물질의 “소리”를 발생시키며 차가움과 뜨거움의 “온도”에 따라 제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술적 존재”로 인식한 듯했다. 그러한 까닭에, 바다는 언어와 사물과 기억을 저 수평선 밑에 봉인해 두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공간이 비선형적으로 결속해 있는, 수수께끼 같은 장소인 셈이다.
바다가 육지와 닿는 해안에는 바다 밑으로 유폐되지 못한 것들이 떠밀려 온다. 혹은 오랜 시간 바다 속에 부유하고 다녔던 잔해들이 다시 육지로 되돌아 와서 낯선 형체로 정박해 있기도 한다. 형세린은 그것을 바다가 삼키지 못한, 말하자면 여태 삭이지 못한 기억과 사물과 언어로 여기면서, 그 잔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낯선 감각을 또 다른 수평선으로 가져다 놓기 위한 상상력에 의해, 그는 회화의 지지체를 유동적 물질로서 바다와 동일시 한다.
이번 전시에서 바다 부유물을 수집하여 설치한 <떠밀려온 드로잉>(2025)은 폭이 10미터 정도로 전시장 큰 유리창 앞에 자리했다. 장도 창작스튜디오 해안에서 수집한 갈대 잔해를 그물에 엮어, 서로 다른 시간에 모아 놓은 부유물들을 군데군데 결합한 이 설치 드로잉 작업은, 바다와 회화와 전시공간 사이의 유동적인 연결점을 환기시킨다. 형세린은 같은 대상이 같은 장소로 떠밀려 오는 해안 부유물들의 정황을 보면서, 바다의 물살이 어떤 기억을 운반하는 (보이지 않는) 통로임을 가늠하게 됐다. 거의 형체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소멸되어 가던 갈대 잔해들의 앙상한 선들은, 그가 그것들을 온전히 주워다 건조시키고 흰색 물감으로 표면을 덮음으로써 어느 순간 캔버스 위의 붓질처럼 어떤 제스처의 흔적을 축적시키는 회화적 사건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이 설치 드로잉은 형세린의 회화적 제스처를 환기시키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 <몽돌 바다>(2025)는 바다와 해안 몽돌 사이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화면 전체가 푸른색으로 덮인 바다와 몽돌 풍경은 마치 차가운 분위기의 필터로 편집한 사진이나 영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화면 중심부에 형광색으로 칠한 저 강렬한 파도의 움직임은, 그가 눈으로 본 것을 넘어 어떤 비현실적 상상이 매개하는 물질적 감각으로 다가온다. 바다와 몽돌 사이에서, 형세린은 이 세계의 크고 단단한 것들은 집어 삼키면서도 끝내 작고 매끄러운 것들로 잔해를 남기고야마는, 파도의 움직임, 회화적 제스처와 유사한 저 큰 파동을, 형광색 물질의 파열로 옮겨 놓은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세린의 회화 캔버스는 바다와 같다. 물감은 유동하는 물질로서 수평선을 이루는 바다의 표면이며, 저 회화의 붓질 너머에는 숱한 형상의 기억들이 유폐되었을 테다. 어떤 순간, 회화의 가장자리, 혹은 회화 표면 위를 부유하는, 이 생경한 물감의 잔해들은, 그가 보내온 회화의 시간과 거기서 떠밀려온 잔해들 간의 모호한 병치를 보여준다.
<이름 모를 뼈 1>(2025)을 보면, 어떤 생물의 머리뼈처럼 생긴 푸른색 유골이 100호 크기의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다. 파란색 뼈가 가능한가? 저 인공적인 색채는 마치 차가운 바다 속에서 오랜 시간 얼어붙어 버린 죽음에 대한 기억을 불러온다. 서늘한 죽음, 이 거대한 뼈 조각은 유폐되지 못한 죽음의 잔해로서, 오랜 시간 바닷물에 굴절돼 제 색채마저 상실한, 죽음의 온도를 말해준다. 형세린은 그것을 그리기 위해, 저 복잡한 뼈의 윤곽을 덮고 있는 파란색 물감과의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테다. 형광색 파도, 파란색 뼈, 그것은 파도의 윤곽과 바다 생물 유해의 윤곽(의 진실)마저 지워버릴 만한 색채에 대한 감각을 주목하게 한다.
형세린은 임의의 형상들을 고정시켜 놓은 자신의 회화 표면을 다시 물감으로 덮는다. 바다의 움직임이 됐든, 바다가 쏟아낸 잔해물이 됐든, 그는 그것은 회화의 평면 위에 고정시켜 놓고 색채의 감각으로 그 윤곽선의 강렬한 상징성을 흔들어 버렸다. 이러한 회화적 변환은 여러 층위에서 되풀이 되곤 하는데, 그는 거의 완성된 그림들 위로 물감을 뿌려 다시 평면의 감각을 일깨운다. 어쩌면 저 빈약한 물감의 흩뿌림은 어떤 시간, 바다의 시간, 회화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저 회화 속 장면들의 또 다른 잔해일 지도 모른다는, 낯선 감각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돌과 물자국>(2025)은 그러한 상상과 깊이 연루된다. 물 속 모래 위에 박힌 돌들을 그린 이 그림은, 돌 표면의 얼룩들과 바다 위 물결의 움직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색채의 중첩을 가능하게 하는 사건의 단서이자, 마침내 사각형의 평면 위에 쌓아 놓은 색채의 층위를 알아차리는 일들로 연결된다. 형세린은 캔버스 옆면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저 단일한 색채로 덮인 듯한 회화의 평면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그 생경한 변화의 지층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작업의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더 이상 붓질이 개입되지 않게 함으로써, 캔버스 옆면의 색채는 회화 표면 밑에 유폐된 또 다른 시간을 암시한다.
<Colour palette documentation on oyster shells>(2025)는 기록이다. 바다와 회화, 시간과 잔해, 그 둘 사이를 엮는 형세린의 색채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바닷가에서 수집한 굴 껍질 위에 회화 작업을 하면서 사용한 물감을 칠해, 바다와 회화의 잔해들이 결합된, (사적인) 기억의 도큐멘테이션을 시도한 것이다. 그것은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일상의 드로잉과도 연결되어, 유실물처럼 떠도는 현실의 잔해들을, 일련의 회화적 재생의 절차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세린은 바다의 시간처럼, 아주 거대하고 아주 느린, 회화의 시간을 가늠한다. 마치 물살에 의해 서서히 육신을 소멸시킨 익명의 바다생물 뼈에서 그가 느꼈을 지도 모를, 색채의 시간, 회화적 물듦의 시간, 그것을 감각할 명분 같은 것을 좇으면서 말이다.
2020 EMO FRAGMENTS; 연관된 파편들, 그어떤 갤러리
김복수
(독립큐레이터)
형세린의 작업의 키워드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경험되는 자신의 감성적 기록들이다. 이는 그가 경험했던 다층적인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과 괴리감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국에서의 낯선 환경에 대한 공감각을 주변 사물과 풍경에 투영하는데 소진된 모기향 패드에 기록하거나 명함카드 모양의 시멘트 조각에 색칠로 기록한 작업들, 주변의 풍경이나 사람, 사물들을 그 기록한 회화 설치작업들이다. 이 단편적인 기록들은 일면 디지털 공간의 아카이빙 이미지와도 닮아 있는데 수집과 필터링, 성형, 조작과 배치 등이 그렇다. 그는 이러한 디지털적 개념과 요소를 수용하면서도 아웃풋은 평면회화의 형식으로 보여준다는 것 또한 그의 작업방식이다.
형세린은 넘쳐나는 개념이나 정보들을 제거한 인공적이거나 디지털적인 시뮬라크르의 이미지를 적극 화면에 끌어들이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추구하는 대상이 직접 경험한 요소들 이라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형광색에서 어두운 검정색 톤으로 넘어가는 그라데이션 이미지인데, 이는 필터링된 디지털 이미지의 테크닉적 요소를 그대로 기용하며 작업의 상징으로 드러낸다.
작가노트에서도 기술하듯 자신이 쓰는 ‘색’은 역사, 심리,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메인 요소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색상 파렛트를 살펴보면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인 '신스웨이브', 이의
하부 장르인 '베이퍼웨이브' 그리고 SF영화 '사이버 펑크' 장르의 색상 파렛트와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하여 자신의 작업을 '베이퍼웨이브 회화' 혹은 '사이버펑크 회화' 라는 영역에서 기술하고자 하는 것과 다음에
펼쳐놓을 작업의 스텝에서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에 같은 맥락에서 변수정 학예사도 형세린의 작업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1990년에 태어난 작가 형세린의 작업은 이러한 베이퍼웨이브의 정서적 배경과 미학적 특징들을 반영하며, 작가는 주로 특정한 색의 구성표를 따른 듯한 단순한 색감과 이를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그라데이션 기법의 그래픽적 요소들을 사용하여 현대 산업 사회에서 대량 생산 체제가 만들어낸 일상적 소비재와 주위의 풍경들을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무한한 상상력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비시간적이고 비공간적인 풍경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판타지 혹은 노스텔지어적 감성을 자극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를 소환’하고 있음을 필자와 같은 맥락으로 읽고 있는 사례다.
이렇게 형세린의 작업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형식은 그라데이션 색을 모든 작업에 기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바탕위에 풍경이나 사물들을 그려놓는데 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련의 시간과 공간의 상징의 아카이브기도 하다. 작업의 예로 시멘트 카드에 기록된 색들은 파렛트에 남아있는 색들의 기록이며 다 소진된 모기향 패드에 그린 드로잉적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이번 전시에서 선보였던 파이프가 그려진 풍경도 자신이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거나 한시적으로 몸담았던 경험 이미지들을 기록한 아카이브인데 이 작업의 배경도 그라데이션의 상징이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작업에서 연결 지점의 상징과 소스 혹은 그 공간의 다채로운 개념의 공통 공간, 에피소드의 공간으로 그라데이션의 이미지가 기호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세린의 모든 작업의 귀결은 회화로 제작되지만 디지털 이미지에 관한 상징은 형세린의 작업에 다가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그는 위에서도 언급하듯이 자신이 줄곧 작품의 중심 매체인 그리기 방식으로서 디지털화된 시각으로 보는 자신과 주변을 아카이빙하는 개념이다. 그에게 이러한 경험은 종적인 개인의 이력이 횡적인 사회문화적 영토로 연결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작업의 지속성으로 가져가야할 핵심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또 그의 작업의 핵심은 누군가의 오류의 역사로 편입되지 않은 한 개인의 삶을 따라가는 과정을 회화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기록한 자료를 뒤지고 분류하는 아키비스트로서의 작업을 거친 후 여기서 발견한 이미지들을 회화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세린 식(式)의 회화들은 대상과 대상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교감과 의식의 흐름, 이미지의 해체를 화폭 안에 천천히 던져 놓는다. 형세린의 회화는 어떤 위계의 질서로 향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대상이 주는
그 이면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이는 대상을 관찰한 무수한 경험의 파편들, 자신이 음미한 시간적 기억과 장소들을 화면에 포착해 놓는 것이다. 단순하면서 구체적인 종들의 형상이 사라진 혹은
그 지리멸렬한 내러티브의 형상을 제거하면서 태어나는 또 다른 의미가 이 거친 회화를 지속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이미 회화라는 구체적 터전에서 발견되어질 그의 다채로운 외연적 실험은 감각된 대상을 기호의 풍경으로, 의미들의 충돌하며 상생하는 특이성의 존재들을 화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2019 수창 청춘맨숀 레지던시
변수정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천 년이 끝나고 시작되는 전환기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누리고 지배한 최초의 글로벌 세대이자 디지털 세대를 일컬어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라 한다. 과거에 비해 문화적으로 보다 다양해진 삶을 사는 이들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나빠진 여건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불확실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은 도피처로서 과거의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과거를 돌아보기를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에 대중적으로 유행한 음악과 이미지를 가지고 하는 일종의 인터넷 놀이이자 하위문화인 베이퍼웨이브(Vaporwave)는 훌륭한 방식으로 통한다. 초창기 그래픽 디자인, 파스텔과 네온 혹은 메탈 의 단순한 컬러 조합 등 소위 B급 정서의 이미지들을 시각적 특징으로 하는 베이퍼웨이브는 기존의 미학적 관점에 반하는 동시에 현대 산업사회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소비되고 사라진 이미지들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최근 재미에서 시작된 인터넷 하위문화를 넘어 철학적, 미학적 움직임으로 회화, 디자인, 사진, 영상과 같은 다양한 예술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1990년에 태어난 작가 형세린의 작업은 이러한 베이퍼웨이브의 정서적 배경과 미학적 특징들을 반영한다. 작가는 주로 특정한 색의 구성표를 따른 듯한(사실은 작가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도출한 자신만의 컬러 팔레트에 따른) 단순한 색감과 이를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그라데이션 기법 같은 그래픽적 요소들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의 주된 소재인 담배, 립스틱, 바세린과 같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대량 생산 체제가 만들어낸 일상적 소비재와 주위의 풍경들을 생경하고 낯선 대상이자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무한한 상상력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비시간적이고 비공간적인 풍경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판타지 혹은 노스텔지어적 감성을 자극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를 소환하기도 한다. 즉, 현대인들의 허구적 향수를 드러내며, 동시에 작가 자신이 속한 세대를 포함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불안한 존재들에게 자신만의 도피처이자 위로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수창청춘맨숀 1기 레지던시 작가로 참여하고 있는 형세린은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최근 새롭게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정된 기간 동안 특정한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적 조건에서 작가는 수창청춘맨숀의 벽면, 옥상 등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소재로 삼았다. 언뜻 보아 다양한 것을 대상화하였지만 특유의 색감과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이전 작업과 비교하여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이는 영국, 노르웨이,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상황에 따라 대상이 달라졌을 뿐 동일한 맥락에서 작업이 이어져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변화를 위해 무수히 고민을 하고 또 그것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섬세한 변화들을 담아내기에 레지던시가 짧은 기간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편, 그래픽적 요소들의 사용으로 인해 디지털적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형세린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역설적이게도 회화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는 회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행하는 물감의 흘림이나 번짐 등의 제스처들 때문이다. 이러한 면을 고수하는 작가의 태도는 자본주의에 과잉 순응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논리를 뒤집는 비판적 속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지난 작업들에 비추어 시간이 지나면서 심화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새롭지만 일시적일 수 있는 미술계 흐름이나 특정 사조에 표피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가만의 방향성으로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인 듯 하다. 형세린은 회화 작업 외에도 예전부터 해왔던 음악 작업을 발전시켜 미래에는 복합적인 형태의 작업을 해 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가 보여주는 새로운 미적 경향과 다양한 시도들은 의미 있는 변화들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작가의 점진적인 성취를 응원하며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지평이 보다 폭넓게 확장되어가기를 함께 기대해 본다.
2018, Iridescent Moment
Filipa Pontes
(Artist, Portugal)
'Iridescent Moment' is the first solo exhibition by South Korean artist Seirin Hyung (1990).
Seirin will showcase her latest paintings, created during the artist's residence in Messen, Ålvik (Norway), between January and March 2018.
Influenced by digital culture and the Vaporwave movement, Seirin starts from the classical model of figurative painting to mirror the contradictions between the speediness and impetus in the contemporary world, and the desire for deceleration. The visual contamination of the digital era interacts with the prevailing feelings of emptiness and nostalgia in the millennial generation. In this sense, the artist explores the contemplative time involved in the act of painting, decontextualizing the objects and landscapes while isolating them in an apparently sterile and ethereal environment. The contrast between neon, pastel, and dark tones represents the will of alienation in an attitude of passive resistance. In her paintings, the context is significant but hidden, and the choice of color denotes a process of re-signification, capturing the immanent energy of the world around her. They are iridescent moments.